아프가니스탄 서부의 험준한 산맥 사이,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고르(Ghor) 주의 깊은 협곡에는 믿기 힘든 광경이 숨겨져 있습니다. 황량한 돌산과 급류가 흐르는 강변에, 뜬금없이 65미터 높이의 거대한 탑 하나가 홀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프가니스탄 ‘잼의 첨탑(Minaret of Jam)’입니다.
12세기,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북부를 호령했던 구르(Ghurid) 왕조가 세운 이 탑은 ‘승리의 탑’이라 불립니다. 몽골 칭기즈칸의 군대가 이 지역을 휩쓸며 모든 도시를 파괴했을 때도, 기적적으로 이 탑만은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전쟁도 이겨낸 이 위대한 유산은 지금 자연의 힘 앞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는 깊은 오지에서 800년 동안 고독을 지켜온 ‘사라진 왕국의 등대’를 만나봅니다.
1. 굽지 않은 벽돌의 기적: 65미터의 예술
잼의 첨탑은 높이가 65미터에 달합니다. 이는 12세기에 지어진 벽돌 건축물로는 믿기지 않는 높이입니다. 인도의 유명한 ‘꾸뜹 미나르(Qutub Minar, 73m)’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벽돌 탑이었습니다. (사실 꾸뜹 미나르도 이 잼의 첨탑을 모델로 하여 지어진 것입니다).
이 탑의 진정한 가ちは 높이보다 그 정교한 장식에 있습니다. 건축가들은 구운 벽돌(Baked Brick)을 마치 뜨개질하듯 쌓아 올려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었습니다. 탑의 몸체는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원통형 구조가 안정감을 줍니다. 외벽에는 이슬람 서체인 쿠픽(Kufic)체와 나스히(Naskhi)체로 코란의 구절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탑 중간에 새겨진 ‘마리아 장(Surat Maryam)’입니다. 이슬람 건축물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구절이 이토록 크게 강조된 것은 종교 간의 공존이나 당시 지역의 독특한 종교적 분위기를 암시하는 미스터리 중 하나입니다.
2. 사라진 수도 ‘터키석 산’을 찾아서
도대체 왜,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첩첩산중 계곡에 이런 거대한 탑을 세웠을까요? 학자들은 이곳이 구르 왕조의 잃어버린 여름 수도, ‘피루즈코(Firuzkoh)’였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터키석 산(Turquoise Mountain)’이라는 뜻을 가진 피루즈코는 당시 번영을 누리던 대도시였으나, 1222년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 칸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 지도에서 지워졌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몽골군은 도시의 모든 건물을 불태우고 파괴했지만, 오직 이 첨탑만은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탑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몽골군이 이 높은 탑을 망루(감시탑)로 쓰기 위해 살려두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결국 도시는 멸망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던 이 탑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폐허가 된 협곡을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1957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기 전까지, 이 탑은 수백 년 동안 외부 세계에 잊힌 채 전설 속에만 존재했습니다.
3. 기울어가는 피사의 사탑: 위험에 처한 유산
800년을 버틴 잼의 첨탑은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등재와 동시에 이곳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습니다. 가장 큰 위협은 바로 탑 아래를 흐르는 두 개의 강, 하리 루드(Hari Rud)와 잼 루드(Jam Rud)입니다.
강물이 불어날 때마다 탑의 기반을 깎아내리고 있어, 현재 탑은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마치 ‘아프가니스탄의 피사의 사탑’처럼 말입니다. 여기에 잦은 지진과 도굴꾼들의 훼손까지 더해져 붕괴 위험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체계적인 보존 공사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강의 흐름을 바꾸는 옹벽을 설치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습니다.
3-1. 잼의 첨탑과 꾸뜹 미나르 비교
형제처럼 닮은 두 개의 탑은 구르 왕조의 건축 양식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 구분 | 잼의 첨탑 (Minaret of Jam) | 꾸뜹 미나르 (Qutub Minar) |
|---|---|---|
| 위치 | 아프가니스탄 고르 주 (산악 협곡). | 인도 델리 (평지). |
| 높이 | 약 65m. | 약 72.5m (세계 최장 벽돌 탑). |
| 특징 | 원형. 쿠픽체 장식, 터키석 타일. 고립된 단독 건물. | 원형+주름진 형태. 붉은 사암. 모스크 단지의 일부. |

4. 현재의 의미: 전쟁터에 핀 꽃
잼의 첨탑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닙니다. 끊임없는 전쟁과 파괴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대변합니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이 탑을 신성시하며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는 길이 험난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협곡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탑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숭고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이 탑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위대한 문명도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그 문명이 남긴 아름다움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 잼의 첨탑은 잊힌 왕국의 마지막 증인이자, 평화를 갈망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보석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