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엘 젬 (El Jem) –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더 완벽한, 아프리카에 세워진 피의 경기장

아프리카 대륙 북단,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작은 마을 엘 젬(El Jem). 이곳에 도착하면 눈을 의심케 하는 거대한 건축물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니 그보다 더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튀니지 ‘엘 젬 원형 경기장(Amphitheatre of El Jem)’입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서기 3세기, 로마 제국의 아프리카 속주였던 티스드루스(Thysdrus)의 번영을 상징합니다. 올리브 오일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이곳 사람들은 로마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경기장을 지었습니다. 3만 5천 명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이곳은 1,800년이 지난 지금도 맹수의 거친 숨소리가 들릴 듯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1.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경기장: 아프리카의 콜로세움

엘 젬 원형 경기장은 로마 제국 전역에 건설된 수백 개의 원형 경기장 중 로마의 콜로세움, 이탈리아 카푸아(Capua)의 경기장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이자,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단연코 가장 큽니다. 길이 148m, 폭 122m, 높이 36m에 달하는 이 거대한 타원형 구조물은 최대 3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티스드루스 도시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숫자로, 인근 도시의 사람들까지 불러모아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쇼를 벌였음을 의미합니다.

이 경기장의 가장 큰 특징은 뛰어난 보존 상태입니다. 로마의 콜로세움이 중세 시대에 성벽 재료로 쓰이기 위해 석재 약탈을 당하고 지진으로 인해 외벽의 상당 부분이 무너진 반면, 엘 젬은 3층 아치 구조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습니다. 1층의 도리아식, 2층의 이오니아식, 3층의 코린트식 기둥 장식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어 로마 건축 양식의 교과서라 불릴 만합니다. 또한, 로마의 콜로세움이 언덕 비탈을 깎아 지어진 것과 달리, 엘 젬은 평지 위에 맨땅에서부터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완전한 ‘독립형 구조(Free-standing)’라는 점에서 건축공학적 난이도와 가치가 더욱 높습니다. 인근 채석장에서 가져온 붉은 사암과 석회암으로 지어진 경기장은 해 질 녘이면 황금색으로 빛나며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2. 지하 세계의 비밀: 히포게움(Hypogeum)과 승강기

엘 젬 경기장의 진정한 경이로움은 관중석 아래가 아니라 경기장 한가운데, 지하에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히포게움(Hypogeum)’이라 불리는 복잡한 지하 시설입니다. 20세기 초 고고학 발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 이곳은 검투사들과 맹수들이 출전 직전 대기하던 공간입니다.

지하 2층 깊이의 긴 복도를 따라 양옆으로 맹수를 가두던 감옥과 검투사들의 대기실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승강기 시스템’입니다. 지하에서 지상(경기장 바닥)으로 연결되는 수직 통로와 복잡한 도르래 장치를 통해, 굶주린 사자나 호랑이, 혹은 무장한 투사를 경기장 한복판으로 순식간에 솟아오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관중들에게 극적인 공포와 흥분을 주기 위한 치밀한 연출 장치였습니다. 지금은 나무 바닥이 사라져 지하 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덕분에 관람객들은 검투사가 걸었던 비장한 통로를 직접 걸으며 당시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3. 피의 역사와 영화의 무대: 살아있는 유적

이 웅장한 경기장은 수많은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검투사들의 결투와 맹수 사냥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공개 처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사자의 밥이 되거나 화형을 당했습니다. 경기장 한편에는 당시 순교자들을 기리는 작은 성당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함 뒤에는 비극의 역사도 서려 있습니다. 17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세금 징수에 저항하던 튀니지 반란군들이 이곳을 요새 삼아 농성하자, 당시 통치자였던 모하메드 베이가 진압을 위해 대포를 쏘아 경기장 벽 일부를 파괴했습니다. 그 거대한 구멍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무너진 벽 틈으로 보이는 튀니지의 푸른 하늘은 오히려 이 건물의 장엄함과 역사의 비극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완벽한 보존 상태 덕분에 할리우드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주요 장면들이 이곳을 모티브로 세트장에서 촬영되었으며, 영화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의 실제 촬영지로도 쓰였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이곳에서 ‘엘 젬 국제 교향곡 축제’가 열려, 촛불로 밝혀진 고대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는 클래식 선율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3-1. 로마 콜로세움 vs 튀니지 엘 젬 비교

두 경기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입지 조건과 보존 상태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구분로마 콜로세움 (Colosseum)엘 젬 원형 경기장 (El Jem)
건설 시기서기 70~80년 (1세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착공.서기 238년경 (3세기). 고르디아누스 황제 때 완공 추정.
규모 (수용 인원)약 50,000명 ~ 80,000명. (세계 최대)약 30,000명 ~ 35,000명. (세계 3위, 아프리카 최대)
지하 시설 (Hypogeum)매우 복잡하고 거대함. 일부 구간만 복원되어 공개.원형 보존율이 매우 높음. 대부분의 구간을 직접 걸어볼 수 있음.
경기장 바닥 아래 숨겨져 있던 지하 공간(히포게움)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4. 현재의 의미: 아프리카에 남은 로마의 유산

오늘날 엘 젬 원형 경기장은 튀니지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 명소이자, 로마 제국이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1990년대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통해 관중석의 일부가 복원되어, 방문객들은 실제로 로마 시대 사람들처럼 돌계단에 앉아 경기장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이 아닙니다. 1,800년 전, 아프리카 북부의 한 도시가 로마 제국의 중심부와 견줄 만큼 번영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거대한 벽은 로마의 영광과 잔혹함, 그리고 이 땅을 스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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