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렙티스 마그나 (Leptis Magna) – 사막의 모래가 지켜낸 로마 제국 최고의 계획도시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130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에는 로마보다 더 로마 같은 도시가 잠들어 있습니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리비아 렙티스 마그나 (Leptis Magna) 입니다. 이곳은 기원전 1,000년경 페니키아인의 항구로 시작했지만, 로마 제국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특히 이곳 출신의 군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서기 193년 로마 황제에 등극하면서, 도시는 제국의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아 아프리카 최대의 계획도시로 재탄생했습니다. 7세기 아랍의 침입 이후 버려져 수백 년간 사막의 모래 속에 묻혀 있었던 덕분에,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로마 유적 중 하나로 꼽힙니다. 황제의 야망이 빚어낸 대리석 도시, 그 화려했던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1. 황제의 금의환향: 세베루스 개선문

도시의 입구에는 렙티스 마그나의 랜드마크인 ‘세베루스 개선문(Arch of Septimius Severus)’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서기 203년, 황제가 된 세베루스가 고향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이 문은 일반적인 개선문과 다릅니다. 네 개의 교차로 위에 세워진 사면 아치(Tetrapylon) 형태를 띠고 있어 동서남북 어디서나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 개선문의 백미는 정교한 부조 장식입니다. 로마의 개선문들이 평면적인 반면, 이곳의 장식은 깊게 파내어 입체감이 살아있는 ‘바로크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개선 행진을 하는 황제와 두 아들(카라칼라, 게타)의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로마 제국의 중심이 이탈리아에서 아프리카로 확장되었음을 알리는 정치적 선전물이기도 했습니다.

2. 바다를 품은 극장과 하드리아누스 목욕탕

렙티스 마그나의 원형 극장은 자연과 건축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줍니다. 서기 1세기에 지어진 이 극장은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이며, 관중석에 앉으면 무대 뒤로 푸른 지중해가 펼쳐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파도 소리와 배우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고대 로마인들은 연극을 즐기며 제국의 풍요를 만끽했을 것입니다.

또한 ‘하드리아누스 목욕탕(Hadrianic Baths)’은 로마 목욕 문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냉탕, 온탕, 열탕은 물론 거대한 야외 수영장(Natatio)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바닥과 벽면은 최고급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으며, 천장은 거대한 돔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위생 시설이 아니라 사교와 휴식, 그리고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고대 도시의 커뮤니티 센터였습니다.

3. 메두사의 시선: 세베루스 포럼

황제는 기존의 포럼(광장)이 좁다고 느껴,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세베루스 포럼(Severan Forum)’을 건설했습니다. 길이 100m, 폭 60m에 달하는 이 거대한 광장은 값비싼 대리석으로 포장되었고, 주변은 아케이드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치를 장식하고 있는 수십 개의 ‘메두사 머리(Medusa Heads)’와 ‘님프의 머리’입니다. 뱀으로 된 머리카락과 부릅뜬 눈을 가진 메두사 조각은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도시를 보호한다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로마 본토의 정형화된 양식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특유의 역동적이고 과감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걸작입니다.

3-1. 렙티스 마그나와 로마(본토) 유적 비교

렙티스 마그나는 ‘아프리카의 로마’라 불리지만, 재료와 보존 상태에서 본토와 차이를 보입니다.

구분로마 (이탈리아)렙티스 마그나 (리비아)
건축 재료주로 벽돌과 콘크리트 위에 대리석 마감.현지 석회암(Limestone)과 수입 대리석의 조화.
보존 상태도시화와 약탈로 인해 많이 훼손됨.모래 속에 묻혀 있어 원형 보존율이 매우 높음.
예술 양식고전적이고 사실적인 로마 양식.동방의 영향을 받은 장식적이고 바로크적인 양식.

4. 현재의 의미: 모래 속에 잠든 미녀

렙티스 마그나는 오랫동안 리비아의 정치적 불안과 내전으로 인해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고립과 사막의 모래가 유적을 도굴과 파괴로부터 지켜주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닙니다. 아프리카 출신 황제가 제국의 정점에 서서 고향에 금의환향했던 성공 스토리이자, 로마 문명이 지중해를 넘어 아프리카 대륙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거대한 기둥과 메두사의 눈빛 속에 잠들어 있는 렙티스 마그나는, 평화가 찾아오면 언제든 다시 깨어나 찬란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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