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바레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석유와 금융입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이 작은 섬나라를 먹여 살린 것은 검은 황금(석유)이 아닌 ‘하얀 황금’, 바로 천연 진주였습니다. 페르시아만의 맑고 따뜻한 바다는 세계 최상급 진주를 만들어내는 천혜의 어장이었고, 로마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바레인 경제의 심장이었습니다.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레인 진주 채취, 섬 경제의 증거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다 밑 진주 밭에서부터 해안의 요새, 그리고 상인들의 화려한 저택으로 이어지는 3.5km의 거대한 ‘진주의 길(Pearling Path)’입니다. 오늘 우리는 일본의 양식 진주가 등장하기 전, 전 세계 보석 시장을 호령했던 바레인의 잊혀진 영광을 따라 걸어보겠습니다.
1. 3.5km의 타임머신: 진주의 길(Pearling Path)
이 유네스코 유산은 점(Point)이 아니라 선(Line)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하라크(Muharraq) 섬 남쪽의 ‘부 마히르 요새(Qal’at Bu Mahir)’에서 시작하여 구도심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진주 산업의 모든 과정을 보여줍니다.
유산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3개의 ‘굴밭(Oyster Beds)’입니다. 이곳은 수천 년 동안 다이버들이 목숨을 걸고 진주조개를 건져 올린 실제 작업 현장입니다. 둘째는 배들이 출항하던 ‘해안과 요새’입니다. 셋째는 육지로 돌아온 진주가 거래되고 가공되었던 ’17개의 역사적 건물’들입니다. 이 건물들에는 선장(Nakhuda)의 집, 다이버의 숙소, 진주 상인의 대저택, 그리고 창고와 모스크가 포함되어 있어 당시 사회의 계급 구조와 경제 시스템을 완벽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2. 1분의 사투: 다이버들의 삶과 애환
진주는 아름답지만, 그것을 얻는 과정은 가혹했습니다. 진주 채취 시즌(6월~9월)이 되면 다이버들은 몇 달 동안 배 위에서 생활하며 매일 수십 번씩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장비라고는 코마개(Clip)와 발에 매다는 무거운 돌, 그리고 밧줄이 전부였습니다.
다이버들은 수심 10~20m 아래로 내려가 숨을 참으며 굴을 캤습니다. 해파리에 쏘이거나 고막이 터지는 일은 다반사였고, 상어의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배 위에서는 ‘당기는 사람(Hauler)’이 밧줄을 끌어올려 다이버의 생명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엄격한 계약 관계와 빚(Debt) 시스템에 묶여 있었지만, 동시에 배 위에서 부르는 노동요와 공동체 의식으로 고단함을 달랬습니다. 바레인 진주의 영롱한 빛깔 속에는 다이버들의 피와 땀, 그리고 숨결이 녹아 있습니다.
2-1. 진주 산업의 사회적 계급 구조
진주 경제는 철저한 분업과 계급 시스템 위에서 돌아갔습니다.
| 역할 | 설명 및 사회적 지위 |
|---|---|
| 타지르 (Tajir) | 최상위 진주 무역상. 인도나 유럽의 보석상과 직접 거래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호화 저택을 건설함. |
| 나쿠다 (Nakhuda) | 진주 배의 선장이자 소유주. 항해와 채취 작업을 총괄하며 다이버들을 관리 감독함. |
| 가이스 (Ghais) | 다이버. 직접 바다에 들어가 조개를 채취하는 핵심 노동력.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일을 담당함. |
| 시브 (Saib) | 배 위에서 다이버의 생명줄을 당겨주는 보조원. 다이버와 2인 1조로 움직임. |
3. 시야디 마즐리스: 진주가 쌓아 올린 궁전
진주 무역으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은 무하라크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정점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시야디 가문의 저택(Siyadi House)’입니다.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이 건물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부의 과시였습니다.
특히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인 ‘마즐리스(Majlis)’는 건축학적 걸작으로 꼽힙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정교한 석고 조각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높은 천장은 당시 진주 상인들의 위세가 왕족 못지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인도에서 온 마하라자나 파리에서 온 보석상들을 맞이하여 최고급 천연 진주를 거래했습니다. 이 화려한 건물들은 진주 하나가 어떻게 흙벽돌 도시를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켰는지를 증명합니다.

4. 몰락과 부활: 일본의 양식 진주와 석유의 발견
영원할 것 같았던 바레인의 진주 전성시대는 1930년대에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급격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첫째는 일본의 미키모토 코키치가 개발한 ‘양식 진주’의 대량 생산이었습니다. 저렴하고 모양이 균일한 양식 진주가 쏟아지자 천연 진주의 가격은 폭락했습니다. 둘째는 1932년 바레인에서 터진 ‘석유’였습니다.
더 이상 목숨을 걸고 바다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진 다이버들은 유전으로 떠났고, 진주 배들은 항구에 버려졌습니다. 진주 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바레인은 그 기억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진주의 길’ 프로젝트를 통해 무너져 가던 고택들을 복원하고, 현대적인 공공 공간을 조성하여 도시를 되살리고 있습니다. 진주는 사라졌지만, 그 진주가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은 바레인의 새로운 보석이 되어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