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르단의 움 알아라사스(Umm ar-Rasas)는 마다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고원 사막 지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로마 제국의 군사 요새로 세워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비잔틴 시대에는 기독교 도시로 성장했고, 이후 이슬람의 통치 아래에서 또 다른 문화적 색채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한곳에서 세 가지 문명이 서로의 흔적을 겹쳐 남긴다는 점은, 단순한 고고학적 가치 이상으로 ‘공존의 역사’를 증언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도 발굴이 진행 중이며, 미공개 구역이 많아 향후 연구 가치가 높게 평가됩니다. 특히 성 스테파노 교회(Church of St. Stephen)에 남아 있는 8세기 모자이크는 요르단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꼽히며, 이 도시가 지녔던 번영과 신앙심을 상징합니다.
로마 군사요새에서 사막 도시로의 진화
리메스 아라비쿠스의 최전선
움 알아라사스는 로마 제국이 동부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리메스 아라비쿠스(Limes Arabicus)’ 방어선 위에 위치했습니다. 사막의 교역로를 감시하고, 유프라테스 강 유역과 지중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했죠. 당시의 성곽은 정사각형 형태로, 군사적 효율성과 통제력을 고려한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약 150m에 달하는 성벽 일부가 남아 있으며, 로마의 건축술과 군사 계획의 정밀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요새는 단순한 군사 거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참 기지와 교역 중계지 역할을 하며 점차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왕의 길(King’s Highway)을 따라 오가는 상인과 순례자들이 머물며 경제활동이 활발해졌고, 이는 군사 요새가 도시로 변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질서와 행정 시스템이 남긴 구조적 흔적은 이후 비잔틴 도시화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현재 발굴된 유적을 보면, 병영의 흔적과 함께 주거지, 저장고, 우물 등이 함께 발견되어 이곳이 군사와 민간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진 복합적 도시로 진화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고대 제국의 변방이 아니라, 문명이 스스로 생명력을 키운 ‘살아있는 도시’였음을 증명합니다.
비잔틴 시대의 신앙 도시로의 도약
5세기 이후 움 알아라사스는 비잔틴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기독교 도시로 재편되었습니다. 도시 중심부에는 여러 교회가 세워졌고, 순례자와 상인이 드나드는 활발한 종교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약 16곳 이상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며, 각각의 예배 공간마다 세련된 모자이크 장식이 남아 있습니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성 스테파노 교회로, 785년에 제작된 대형 모자이크 바닥이 이곳의 상징으로 꼽힙니다. 모자이크에는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이집트의 주요 도시 이름과 풍경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당시 지역 네트워크와 교역 관계를 반영한 일종의 지도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모자이크는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고대 사회의 공간 인식과 도시 간 관계를 시각적으로 기록한 ‘역사적 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장식들은 당시 종교적 신념뿐 아니라 기술적 세련미를 보여줍니다. 석회암 타일을 정교하게 이어붙여 색채와 형태를 구현한 솜씨는 오늘날의 보존 상태에서도 그 섬세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합니다. 이러한 예술적 성취는 비잔틴 예술의 절정기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슬람 시대의 공존과 변화
7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이 요르단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움 알아라사스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기독교적 유산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슬람 통치자들은 기존 도시 구조와 시설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층위를 덧입혔습니다. 교회의 벽화나 모자이크에서 인물상이 제거되거나 단순화된 것은 당시 이슬람의 종교적 금기와 예술관의 반영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절이라기보다는 ‘조율’이었습니다. 로마와 비잔틴의 흔적 위에 이슬람 양식이 덧입혀지며, 사막 도시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그 결과 움 알아라사스는 서로 다른 문명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고 적응한 보기 드문 유산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유적의 건축 양식을 보면 로마식 돌쌓기, 비잔틴식 아치, 이슬람식 장식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의 도시에서 이처럼 다양한 시대의 미감과 구조가 공존하는 사례는 중동 지역에서도 드뭅니다.
| 시대 구분 | 변화 내용 | 상징 요소 |
|---|---|---|
| 로마 시대 | 군사 요새 건설 | 사각형 성곽 |
| 비잔틴 시대 | 기독교 도시 발전 | 교회·모자이크 |
| 이슬람 시대 | 문화적 공존과 재해석 | 기하무늬 장식 |
예술과 신앙이 만난 모자이크의 세계
성 스테파노 교회의 모자이크
이곳의 대표적인 유산인 성 스테파노 교회 모자이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모자이크 중심부에는 사냥 장면과 일상의 풍경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고, 주변에는 예루살렘, 가자, 암만, 헤스본 등 고대 도시들이 명문과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각 도시는 고유의 문양과 건축물로 표현되어, 당시 사람들이 인식한 세계의 지도를 그려놓은 듯합니다.
모자이크의 제작 연대가 8세기 후반, 즉 이미 이슬람 통치하였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이는 기독교 공동체가 여전히 도시 내에 존재했고, 종교적 표현이 일정 부분 용인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됩니다. 종교적 관용이 남긴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존 상태 또한 매우 양호합니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가 손상을 줄였고, 요르단 정부와 유네스코의 관리 아래 보호 지붕과 데크 관람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광객은 모자이크 위를 직접 밟지 않고 전체 구도를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기술과 미학의 결합
모자이크 제작에는 수천 개의 석회암 조각이 사용되었습니다. 각 조각은 색상과 재질이 조금씩 달라 입체감을 형성합니다. 당시 장인들은 천연 염료로 색을 내고, 미세한 각도를 조절하여 빛의 반사까지 계산했습니다. 이러한 기술력은 단순한 장식 예술을 넘어, 신앙적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설계였습니다.
모자이크 하부에는 배수 구조가 설치되어 있어 수분 유입을 최소화합니다. 이는 당시 장인들의 공학적 지식이 예술과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1,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모자이크가 거의 원형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 기술적 완성도 덕분입니다.
예술성과 기술력, 그리고 신앙의 열정이 하나로 어우러진 결과물이 바로 움 알아라사스의 모자이크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라진 문명들의 대화이자,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려는 끊임없는 시도의 흔적입니다.
현대의 보존과 방문 경험
유적의 접근과 관람
움 알아라사스는 암만에서 차로 약 70km 떨어져 있으며, 마다바를 거쳐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는 주차장과 안내 표지판이 마련되어 있지만, 일부 구역은 여전히 발굴 중이라 관람 동선이 제한적입니다. 방문객은 지정된 데크를 따라 교회와 성곽을 순환하며 관람할 수 있습니다.
모자이크가 있는 교회는 지붕 아래 보호되어 있어 햇빛이나 바람에 의한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침과 해질 무렵의 부드러운 빛 속에서 모자이크의 색채와 질감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므로, 방문 시간대 선택이 중요합니다.
사막 지역 특성상 낮 기온이 매우 높으므로 충분한 물과 모자를 준비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요르단 패스를 통해 입장료가 면제되며, 현지 가이드를 동행하면 역사적 맥락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존의 현실과 과제
유네스코 등재 이후 요르단 정부는 모자이크 보호 지붕, 배수 설비, 보행로 설치 등 기본적인 보존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풍화와 낙석, 관광객의 무단 접근 등으로 인한 훼손 우려가 존재합니다. 일부 벽체는 보강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보존 계획이 요구됩니다.
유적의 방대한 면적 때문에 모든 구역을 관리하기 어렵고, 인력과 예산 부족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이에 따라 국제 협력 프로젝트와 현지 주민의 참여 프로그램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해서는 방문객 스스로의 의식 변화도 필요합니다. 유적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인류의 기억’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보존의 첫걸음입니다.
시간의 켜를 걷는 도시, 움 알아라사스의 교훈
세 문명의 공존이 남긴 메시지
움 알아라사스는 로마, 비잔틴, 이슬람이라는 세 시대의 문명이 한 공간에서 겹겹이 쌓인, 세계적으로도 드문 도시 유적입니다. 이 세 문화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구조를 이어받으며 공존했다는 점은 오늘날 종교와 문화의 공존을 논할 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각 시대의 흔적은 단절이 아닌 연속의 형태로 남았습니다. 로마의 벽돌 위에 비잔틴의 모자이크가 놓이고, 그 위에 이슬람의 단순한 장식이 새겨진 풍경은 인류 문명이 어떻게 진화하고 적응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층성은 움 알아라사스를 단순한 유적이 아닌, ‘살아 있는 교과서’로 만들어줍니다. 이곳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게 하고, 공존의 가능성을 상기시킵니다.

현재의 의미
움 알아라사스는 로마 제국의 군사 요새로 출발해 비잔틴 시대의 신앙 도시를 거쳐, 이슬람 통치 아래 새로운 정체성을 얻은 사막 도시입니다. 이곳의 중심 유적, 성 스테파노 교회의 모자이크는 785년에 제작되어, 도시 네트워크와 신앙적 상징을 모두 담은 비잔틴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됩니다.